홍콩영화계에서 이소룡과 성룡으로부터 완전히 단절한 진짜 ‘현대’ 홍콩영화는 오우삼 감독과 주윤발로부터 나왔습니다. <영웅본색>(1986)은 한국에서 이른바 ‘홍콩 누아르’라 불리는 일군의 홍콩 액션영화들의 ‘원본’이 됐습니다. 이후 수많은 아류작들이 범람할 때도 주윤발의 <첩혈쌍웅>(1989)과 <첩혈속집>(1992)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독자적인 세계를 완성했습니다. 하지만 주윤발의 대단한 점은 액션영화 안에 갇혀있지 않고 <대장부일기>(1988)와 같은 코미디, 한국 영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던 정통 멜로영화 <가을날의 동화>(1987), 그리고 종초홍과 함께 출연하여 홍콩 누아르와 멜로영화의 진한 결합을 보여준 <타이거맨>(1989)에 이르기까지 그 연기력을 뽐냈다는 점일 것입니다.

‘아시아 루저들의 영웅’이라 불리는 주성치는 메가 히트작 <도성>(1990)을 시작으로 특유의 말 개그와 몸 개그로 홍콩영화계 최고의 흥행배우로 떠올랐습니다. 홍콩 누아르로 대표되는 액션영화 위주의 홍콩영화계가 그로 인해 일대 전환점을 겪게 됩니다. <도학위룡> <정고전가> <신격대도> <신정무문> <심사관> <홍콩 레옹> <파괴지왕> 등을 거쳐 <소림축구>(2001)와 <쿵푸허슬>(2004) 등 변함없이 중화권을 대표하는 주성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.

홍콩누아르와 함께 주성치의 코미디 영화로 홍콩영화계가 양분되었다면, 그 사이에서 <금지옥엽>(1994) 등을 만든 진가신 감독이 설립한 UFO 영화사는 홍콩영화계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습니다. 그중에서도 <첨밀밀>은 장만옥과 여명이라는 톱스타 외에도 홍콩의 지난 역사를 담담하게 돌아보는 시선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. 한국 멜로영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던 <첨밀밀>과 그로 인해 다시 유명해진 등려군의 ‘월량대표아적심’도 추억을 새삼 불러일으킵니다.

2000년대 들어 홍콩영화는 과거의 전성기를 뒤로 한 것으로 보였습니다. 하지만 유위강, 맥조휘 감독의 <무간도>는 유덕화와 양조위의 만남은 물론, 기존 홍콩 누아르의 공식을 벗어난 탁월한 스릴러 감각으로 다시 한 번 홍콩영화의 건재함을 알렸습니다. 유덕화와 양조위라는 서로 다른 얼굴이 서로 다른 위치에서 빚어내는 긴장감은 할리우드에서 <디파티드>로 리메이크되기도 했습니다. 어쩌면 한국에서 개봉한 홍콩영화들 중 가장 마지막 화제작이자 흥행작이라 할 수 있는 <무간도>를 다시 봅니다.